모아둔 이야기들

암소 아홉 마리

주책마녀 닥터홍 2014. 8. 6. 21:03

아프리카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의사가 있었다.
교통과 통신이 불편할 뿐 마을은 정말 그야말로 매우 풍요롭고 아름다웠다.
의사는 목축과 농사를 주로 하는 마을 사람들과도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특히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추장의 젊은 아들과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추장의 아들은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지만 유학으로 혼기가 늦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결혼을 하려는 청년은 암소를 끌고 처녀의 집에 가서는
장인 될 사람에게 <암소를 주고> 청혼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정말 예쁜 신붓감에겐 살찐 암소 세 마리를 주는데, 이 마을이 생겨난 이후로
그렇게 한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라고 했다.
보통 경우는 좋은 신붓감은 암소 두 마리, 보통의 신부는 한 마리를 받았다.
그러니 신부가 아름답고, 훌륭한 정도에 따라 암소의 개수가 결정된다.

어느날, 추장의 아들이 암소를 몰고 청혼하러 나섰다. 그런데 암소를 자그마치
아홉 마리나 몰고 나선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과연 어떤 여자이기에
청혼하는데 이리 많은 암소를 주려 하는지 궁금해 그 뒤를 따랐다.
추장의 아들의 청혼길이니 많은 사람들이 몰리며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참을 걷더니 추장의 아들은 어느 허름한 한 노인의 집 앞에 멈춰서는
암소 아홉 마리를 입구에 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청년이 청혼한 노인의 딸은 말라깽이에다 키가 너무 크고 병약한 외모에다가
마음까지 심약해서 늘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자기 그림자만 보아도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전형적인 소 한 마리, 기껏해야 소 두 마리짜리 처녀였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청년이 미쳤다고 수군댔고, 심지어는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렸다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다.

친 형제와 같이 지내던 추장 아들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그 의사는 본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추장 아들에게 결혼식 잘하고, 잘 살라는 인사말만 남긴 후
본국으로 돌아온 의사는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그 마을에 휴가를 가게 되었다.
의사는 세월이 흘러 마을의 추장이 되어 있는 그 청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형제들처럼 그들의 만남은 반가웠다. 그런데 그 집에서
그 의사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을 봤다. 의사는 많은 여자를 보아왔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흑인 여인을 본 일이 없었다. 우아한 자태와 유창한 영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까지, 정말 완벽한 여자가 있다면 이 여자다
싶을 정도였다. 의사는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추장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 처입니다. 저 사람이 그 때의 그 심약했던 처녀입니다.”
의사는 정말인가 하고 아연실색했다. 어안이 벙벙한 의사를 보며 추장은 말을 이었다.

-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긴 세월 속에서도
저 사람의 말고 고운 눈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저 사람과의
결혼을 꿈꿔 왔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마을에선 청혼의 관습 때문에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여자들의 세계에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우스꽝스럽다 여겼지만 그런 관습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저도 청혼을 위해선
암소를 몰고 가야만 했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한 마리의 암소면 충분히 혼인 승낙을 얻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청혼의 순간에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평생의 자기가치를 결정 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사무치는 제 소중한 감정입니다.
저는 제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한 두 마리의 암소 값에 한정 하고
평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세 마리를 선물하면 그 옛날 세 마리를 받았던 훌륭했던 사람들과 비교될 것이고,
그러면 제 아내는 또 움츠려 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저는 세 마리를 훨씬 뛰어넘는
아홉 마리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처음에 아내는 아홉 마리의 암소 때문에 무척 놀란 듯 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고 제 사랑의 진정함을 느끼게 되자 아내는
아홉 마리의 암소가치가 과연 자신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 후로 자신의 가치를 아홉 마리에 걸맞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았습니다.
항상 저의 사랑에 대한 자신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공부를 하거나 외모를 꾸미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 라고 이야기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점점 더 아름다워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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